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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훈쓰 Story/ TaeHunism

[펌] 어느 물리학자가 바라본 황우석 논란

들어가기에 앞서

'협박'을 동원했다던 PD수첩의 취재행태라는것을 사실이었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생각할때, 나는 그 PD수첩의 행태를 옳다고 감싸려는 생각은 없다. 그리고 황우석 교수에 대해서 의심어린 눈초리보다는 애정어린 눈초리로 그의 연구성과가 꽃피워낼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내가 문제시 삼고자하는건, '국민의 힘'이라는 말들로, 황우석 교수의 모든걸 노터치의 반열에 올려놓고, 그에 대한 어떤 문제제기나 비판도 '매국노'로 매도하며, MBC방송국 산하의 시사교양국에서 제작되는 PD수첩이라는 프로에서 만들어진 사건을 가지고, MBC전체를 말살하려는듯한 움직임. 그 적절치 못한 분풀이에 반대한다. 자본주의가 가지는 효율성은, '시장'에서 모든것이 경쟁속에서 자연스레 검증되는 시스템을 가졌다는것일진데, 황우석 교수의 연구에 대해서, 어떤 언론사의 취재팀이 문제제기를 했다면, 그것은 황우석 교수측에서 과학적 검증에 따른 객관적 반박으로 '니네 즐쳐드삼'하면 되는것이지, 네티즌들이 궐기하여 '니네들이 감히 우리의 고귀하신 황우석 교수님을 깎아내려?' 하는식의 반응이 필요없다는 얘기다. 과학적 사실을 놓고 벌어진 일이니만큼. 어떤 사상에 대한 주관적 평가를 기반으로한 논쟁보다, 아주 간단히 객관적으로 진실규명이 가능한일일것이고, 그렇다면 그 진위를 명백히 밝힌후. PD수첩의 제작진에게 반박을 하는것이 옳은 방법이지, 불순한 그들을 처단하자고 떠들어댈 필요가 없다는게 내 생각이다. 그리고 취재과정에서 취재윤리에 어긋나는 부당한 협박같은것이 존재했다면, 그 당사자를 문책하는게 옳지, MBC전체를 망하게 해버리자며, 분기탱천하는 모습은 그다지 적절해보이지 않는다.



[필진]어느 물리학자가 바라본 황우석 논란

몇 달 전 SCI급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을 발표하는 세미나를 한 적이 있었다. 끝날 무렵에
누군가가 이렇게 질문했다.
“그 계산 결과를 내가 도대체 어떻게 믿을 수 있죠?”

한편으로 생각하자면 남의 계산 결과를 의심하는 것이 상당히 무례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질문은 사실 학계에서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만약 내가 거기다 대고 “이미 학술지에 실린 논문인데...” 라고 대답한다면, 웃음거리가 되지는 않더라도 아마 질문자에게 충분한 해명이 되지는 않았을 터이다. “제 계산 노트 보여 드리죠.” 라는 한마디로 상황은 끝났다.


물리학을 전공한 내가 박사과정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모든 것을 의심하라”는 것이었다. 흔히 교과서라고 불리는 출판서적들은 물론 유명 학술지의 ‘검증된’ 논문조차도 자기가 직접 확인해 보기 전에는 “절대로 믿지 말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르침 중의 하나였다. 실제로 과학이 발전해 온 역사를 보더라도 이런 의심과 회의야 말로 과학의 성공을 보장해 준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의심과 회의는 필연적으로 기존의 권위와 상식에 대한 도전일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 도전받는 권위는 이런 갖가지 도전을 이겨냄으로서 자신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해 낸다. 그래서 귄위에 대한 도전과 의심, 공격과 방어는 매우 자연스러운 과학 활동의 일부분이다.

천하의 아인슈타인도 양자역학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은 과학자로 남았다. 스스로가 생애 최대의 실수라고 인정했던 우주상수는 근래에 와서야 그 중요성이 다른 이유로 인해 다시 주목받고 있는 실정이다. 현존 최고의 물리학자라는 스티븐 호킹도 블랙홀에서의 정보 상실이라는 자신의 주장이 무수한 공격을 받았지만 아무도 그런 의심과 도전을 ‘흠집내기’라는 식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최근에 그는 자신의 이론을 일부 수정하기에 이른다. 실험과학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비교적 큰 규모로 이루어지는 실험 결과를 놓고서도 저건 잘못된 실험이라는 주장들이 언제나 제기된다. 그 결과가 어느 학술지에 얼마나 비중있게 실렸나 하는 사실 자체는 과학적인 근거와 관련해서는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과학자가 자신의 양심과 과학적 근거에 비추어 납득되지 않으면 의문을 제기하고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그들의 본능에 가깝다. 과학자들은 수년에 걸쳐 그렇게, 어지간해서는 “절대로 믿지 않도록” 철저하게 교육받기 때문이다. 과학이 지금까지 성공한 학문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과학적 방법론이 그 활동의 모든 과정에서 철저하게 관철되기 때문이다.


최근 황우석 교수팀의 인간 배아줄기 세포와 관련된 논란을 보면서 한 가지 매우 안타까운 점은 그 어디에서도 문제해결을 위한 과학적 방법론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사이언스나 네이쳐라는 학술지가 연구결과 혹은 진실의 최종 잣대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과학자들에게는 그저 이름있는 학술지 중의 하나일 뿐이다. 단지 거기에 실렸다는 이유만으로 그 논문을 믿는 과학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래서 논란의 초기에 황우석 팀에서 ‘사이언스에 실렸으니 검증이 다 되었는데...’라고 주장하는 것은 적어도 과학자의 상식으로 봤을 때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그런 주장을 대한민국 최고의 과학자 집단에서 했다는 사실, 과학계에서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권위에 대한 도전과 의심과 회의를 흠집내기로 몰아가는 태도 등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일반인들의 여론과는 달리 젊은 과학자들이 모이는 인터넷 게시판들(scieng나 kids, 혹은 bric)에서는 황우석 팀의 이런 대응방식에 많은 의혹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정말 ‘과학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윤리를 위해 취재과정에서의 최소한의 윤리를 어겨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논란을 해결하는 과정이 비과학적이거나 심지어 반(反)과학적이어서는 결코 안 된다. 젊은 과학자들은 바로 이 점 때문에 국민 대다수의 여론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왜 황우석 팀은 이 사건을 ‘과학적’으로 해결하지 않는가.

온 국민을 며칠간이나 혼란에 빠뜨린 이번 사건은 전 세계는 물론 인류 전체의 과학 발전에 중대한 획을 그은 위대한 성과에 관한 것임에 반해 그 대응방식에서 ‘과학’ 혹은 ‘과학적 방법론’은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더군다나 해당 연구집단이 일반 대중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반면 같은 과학자 집단으로부터는 큰 신뢰를 얻지 못한다는 점이 매우 이례적이다.


혹자는 <피디수첩>이라는 비전문가가 세계적인 과학적 업적을 검증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하지만 이 또한 그리 과학적인 주장이 못된다. 과학적인가 아닌가는 그 주체가 누구인가와는 상관없이 주체가 벌이는 행위가 얼마나 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해 있는가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많은 젊은 과학자들은 다소 어설픈 <피디수첩> 제작진들에게 대한민국 최고의 과학자 집단으로서의 황우석 팀이 이번 기회에 과학이란 어떤 것인가를 제대로 ‘한 수 지도’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미 잘 알려진 대로 황우석 팀은 오히려 스스로 합의한 방법론을 거부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전혀 과학적이지가 않다. 기존의 방법이 과학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새로운 과학적 방법을 제시하면 된다. 황우석 팀의 뒤이은 언행은 이 땅의 많은 과학자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줄기세포를 다시 시연해 보이겠다는 말은 예컨대 화살을 과녁의 퍼펙트 골드에 한 번 더 꽂아 넣어 보겠다는 말인데, 누구도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과녁에 꽂혀 있는 화살의 지문검사만 하면 그냥 끝날 일이다. 새로운 연구 성과를 내보이는 것으로 검증을 대신한다고 하는 말도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 앞으로 나올 연구 결과와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배아줄기세포의 진위여부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이건 과학의 문제 이전에 상식의 문제다.


황우석 팀은 과학적인 방법론의 정도를 걷기보다는 언론플레이만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같은 과학자의 입장에서 매우 서글픈 일이다. 젊은 과학자들이 찾아낸 사이언스 논문의 동일한 세포사진도 황우석 팀의 주장과는 달리 이미 사이언스에서 검토 중인 게 아니라, 논란이 있고 나서야 황우석 팀에서 정정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확인되었고, <피디수첩> 때문에 세계최초를 빼앗겼다는 일본의 그 논문은 취재 들어가기 전인 5월말에 벌써 제출된 상태였다. 연구팀의 핵심 관계자들이 과학의 정도를 걷는 대신 연이어 거짓된 주장들을 언론에 계속 내놓는 한 과학자 사회에서의 학자로서의 신뢰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문제의 배아줄기 세포가 진짜라고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그러나 과학은 종교가 아니다. 과학적인 믿음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어야만 한다. 국익에 비추어 본다면 매우 매몰차 보일지 몰라도 과학자들은 매사에 의심하고 회의를 품고 0.1%의 의혹에도 문제제기하도록 그렇게 교육받고 훈련받은 사람들이다. 저자 중 한 명이 논문의 진위에 의혹을 제기한 점, 문제의 배아줄기세포 DNA를 공정한 제3자(사이언스를 포함해서)가 검증했다는 사실이 전혀 없다는 점, 후속 연구와 이 문제는 전혀 별개라는 점은 생명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다 알 수 있는, 이미 알려진 ‘사실’들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적어도 ‘본능적으로 의심’하는 과학자들에게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행위다. 그리고 이처럼 그다지 심오하지도 않은 뻔한 사실들을 놓고서 ‘과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을 하기가, 또 받아들여지기가 이렇게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면, 나는 아마 과학자의 길을 걷지는 않았을 게다.


황우석 교수는, 나 또한 존경해 마지않는, 대한민국 최고 과학자 제1호다. 그런데,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가 이끄는 연구팀에 의해 대한민국의 과학이 실종되어 버리는 지금의 상황이 나는 너무나 안타깝다. 팀내 안규리 교수는 이번 일로 후배 과학자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많은 염려를 하셨지만, 정작 젊은 과학자들은 전혀 과학적이지 못한 선배 과학자들의 태도와, 의심하고 문제제기하는 과학자로서의 본능과 양심을 사회적으로 거세당한 참담함에 괴로워하고 있다. 이를 짓밟고 성취한 국익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과학입국을 꿈꾸는 대한민국을 정말 가치있는 나라로 만들 수 있을까...


과학도로 첫발을 내디딜 때 가슴에 품은 한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진리는 나의 빛이니(VERI TAS LUX MEA)!"